불과 몇 년 사이에 전 세계는 다양한 형태의 혼란을 겪고 있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되며 전 세계를 강타한 COVID-19 사태는 여러 나라들이 격리, 출입국 제한 등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하게끔 하였으며, 올해 일어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각종 원자재 및 유가의 급격한 상승을 비롯하여 러시아와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의 경제활동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상거래에 관한 계약 중에서도 국경을 초월한 국제물품매매계약은 이와 같은 국제정세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EU의 경제 재제는 러시아에 대한 수출입 금지, 거래 금지, 관세 및 기타 조치를 통한 무역 제한 및 제재 관련 지역에 대한 항공기 및 선박 운항 금지 등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해당 제재의 영향을 받는 자들이 부득이하게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되며 생겨난 분쟁들이 이미 다수 진행 중에 있다.

이와 같은 경제 제재로 인해 채무의 이행이 어렵게 된 채무자들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책임을 지는 것을 흔쾌히 동의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자가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면책 사유는 "불가항력(Force Majeure)"이다. 이는 전염병, 전쟁 등 계약 당사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불측의 사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각국의 법제마다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각 국가는 불가항력이 인정되는 경우 계약 당사자들이 면책될 수 있는 여지를 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상법의 해상 편 역시 불가항력으로 인한 운송인의 면책사유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바, 상법 제796조 제2호에서는 운송인이 운송물에 관한 손해에 관하여 면책될 수 있는 사유 중 하나로 "불가항력"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상운송계약의 준거법을 대한민국 법으로 정한 경우에, EU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가 대한민국 상법상의 불가항력의 사유에 해당하여 당사자들이 면책을 주장할 수 있을지, 해상운송계약의 당사자들은 어떻게 이러한 위험에 대비하여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1. 불가항력의 의의 및 대한민국 대법원의 입장

대한민국의 대법원은 "불가항력(Force Majeure)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이 당사자의 지배영역 밖에서 발생한 것으로 그 사업자가 통상의 수단을 다하였어도 이를 예상하거나 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음이 인정되어야 한다."라는 판시를 한 바 있다. 이러한 판례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법원에서 불가항력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은 ① 원인이 당사자의 지배영역 밖에서 발생하였을 것 ② 예견가능성 및 회피가능성이 없을 것이라 할 수 있다.

2. 요건 ① '원인이 당사자의 지배영역 밖에서 발생하였을 것'

요건 ①은 불가항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채무불이행의 원인이 계약 일방 당사자의 통제를 벗어난 예외적인 상황으로 발생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대한민국의 대법원은 공사도급계약에 따른 지체상금의 발생 여부 관련, 천재지변이나 이에 준하는 급격한 변동 등 불가항력으로 인한 수급인의 지체상금 지의무의 면책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른바 IMF 사태 및 그로 인한 자재 수급의 차질 등은 그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사정이라고 볼 수 없고, 천재지변에 준하는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지체상금의 면책사유로 삼을 수 없다(대법원 2002. 9. 4. 선고 2001다1386 판결)."라는 판시를 하였다.

또한 오피스텔 분양계약을 체결한 원고가 피고들에게 입주 지연을 이유로 계약 해제 등을 주장한 사안에서, 피고는 해당 공사 지연이 자재 공급업체의 파업으로 인한 것이며 이는 피고의 지배영역 밖의 사안이라는 주장을 하였으나, 법원은 자재의 수급과 관리는 모두 시행사의 책임 영역 안에 있는 사항으로 피고에게 대체 업체를 물색하는 등의 의무가 있는바, 이는 불가항력의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5. 22. 선고 2018가합529238 판결).

즉, 대한민국의 법원은 경제위기인 IMF 혹은 제3자의 파업 등 계약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상황으로 인해 채무의 이행에 차질이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계약 당사자는 여전히 자신의 책임하에서 채무의 이행을 완료할 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해당 채무불이행이 당사자의 지배영역 밖에서 발생한 것임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의 하급심 법원의 판결 중에는, 중국계 회사로부터 무연탄을 수입하여 오던 원고가 북한 정부의 무연탄 수출 금지로 인해 계약의 이행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피고에게 불가항력에 의한 이행불능을 통지하였으나, 피고는 원고의 채무불이행 책임을 물은 사안에서,

"북한은 특수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민간교류에 있어서도 통상의 거래와 달리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사유로 교역이 중단되기 쉽고 이는 원고의 지배영역 밖의 일이므로 원고는 지체상금 등을 부담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를 한 사례도 있다(의정부지방법원 2010. 10. 14 선고 2010가합4018 판결 참조).

3. 요건 ② '예견가능성 및 회피가능성'

요건 ②는 불가항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해당 사유가 계약 체결 시에는 예견 불가능했으며, 당사자가 사건의 영향을 회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었던 사건이나 상황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해당 요건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태풍으로 인한 선박 표류 사건에서 "당사자가 강풍과 풍랑으로 인하여 선박들의 닻줄 등이 위 선박의 스크루에 잠기어 그 작동이 멈추게 되고 기동력을 상실한 후 양식장으로 표류하여 갈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불가항력에 의한 면책을 부정한 바 있다(대법원 1991.1.29. 선고 90다12588판결).

또한 마스크 공급계약을 체결한 사업자가 마스크 품귀 현상으로 인해 채무의 이행을 완료하지 못하고 불가항력을 주장한 사안에서, 법원은 원고가 마스크 납품 계약을 체결할 당시, 이미 마스크의 수요 증가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고 공급업자의 예견가능성을 인정하여 불가항력에 의한 면책을 부정한 바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0. 6. 16. 선고 2009가합145966 판결)

4. 결론

대한민국의 법원은 불가항력(Force Majuere)에 따른 면책을 다소 소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전염병, 기상악화 등 이례적인 상황 하에서도 다른 경로를 통해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였다거나, 조금이라도 이를 예측할 수 있는 신호가 존재하였다면 면책사유로의 '불가항력'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구체적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이와 같은 불가항력에 대한 법원의 태도에 비추어 보았을 때, 러시아에 대한 경제 재제로 인한 운송인의 채무불이행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법원이 상법상 불가항력에 의한 면책을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 한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 재제로 인해 계약 당시 예정한 운송경로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법원은 운송인에게 즉시 대안을 마련하여 채무의 이행을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대러 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해상운송계약의 당사자들은 갑작스럽게 터미널의 이용이 제한되거나 물건의 환적 승인이 거절되는 등 계약 체결 당시 예상하지 못하였던 다양한 형태의 위험을 겪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하여 각 당사자들은 계약상 불가항력의 조항을 미리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불가항력으로 인한 면책 조항을 명시할 것인지부터 시작하여 불가항력을 어떻게 정의할지, 이를 한정적 열거조항으로 둘 것인지 단순 예시조항으로 둘 것인지 등 그 구체적인 내용 역시 각자의 필요에 맞게 신중하게 검토한 후 계약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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