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ntroduction: 한국법상 배임죄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은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뉴노멀을 관통하는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경영도 성장보다 지속가능성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비재무적 요소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1가 오늘날 기업 경영의 메가트렌드가 된 것은 이러한 흐름에 기반합니다. ESG가 기업의 가치 평가로 이어지는 변화된 경영 환경에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중 경영진의 횡령·배임 이슈는 지배구조(Governance) 영역의 대표적인 차감항목(controversy)이자, 그 자체로 지속가능성을 흔드는 거대한 리스크입니다. 한국법은 기업인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는 포괄적인 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용범위가 모호한 법률 조항으로 인해 경영에 과도한 형사적 개입이 이루어지고,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비판이 있으나,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려면 반드시 현행법상 배임죄에 대한 사전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2. 현행법에 나타난 배임죄의 특징

1) 한국에서는 형법(제356조와 제355조 제2항), 상법(제622조), 그리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 제3조)이 각 배임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법은 회사의 발기인, 이사, 집행임원, 감사 등을 대상으로 특별 배임죄를 규정하나 실무상 기업 경영행위에는 주체에 대한 제한이 없는 형법 제356조의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합니다. 업무상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업무상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경법은 배임액이 5억원 이상일 때 가중처벌하는 특별법으로, 이득액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은 3년 이상(제3조 제1항 제2호), 50억원 이상은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이라는 법정형(제3조 제1항 제1호)을 규정하고, 각 이득액에 상응하는 벌금을 병과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제3조 제2항). 만약 배임액이 50억원 이상이면, 특경법 적용 대상으로 정상을 참작해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실형을 피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2) 이처럼 현행법상 배임죄는 그 법정형이 과중할 뿐 아니라,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재산적 손해 발생 위험만 있어도 성립하고, 그 구성요건인 '임무위반', '재산상 손해' 등 개념의 추상성과 모호함으로 인해 확대 해석이 가능하여, '재산적 비행의 하수종말처리장'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실제로 수사기관은 기업인의 경영활동 전반에 배임죄를 광범위하게 적용하여 기소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상적인 경영을 하더라도 결과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범죄 성립 여부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신생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유망한 신사업에 투자했는데 해당사업이 실패한 경우가 있습니다. 한편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계열사를 지원하는 경우에는 해당 계열사가 정상화되어도 도움을 준 계열사의 경영자는 배임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2 결과적으로 국내에서 모든 경영상 의사결정은 배임죄 처벌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3. 다른 나라의 입법례와 경영판단의 원칙 (Business Judgment Rule)

1) 배임죄를 명문으로 규정한 나라 - 독일, 일본과의 비교

한국 외에 배임죄를 처벌하는 나라는 독일과 일본이 있습니다. 독일과 일본의 배임죄는 구성요건이 명확하고, 성립요건도 더 엄격하다는 점에서 국내법상 배임죄 규정과 차이가 있습니다. 독일법은 『① 법률, 관청의 위임 혹은 법률행위에 의해 수여된 타인의 재산을 처분하는 행위 ② 타인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권한을 남용하는 행위 ③ 법률ㆍ관청의 위임ㆍ법률행위 혹은 신임관계에 의해 부여된 타인의 재산상의 이익을 보호하는 의무를 위반해 본인이 그 재산상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자에게 손해를 가하는 자』로 배임죄의 주체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일본법은 『자기 혹은 제3자의 이익 또는 본인에 손해를 가할 목적』이라는 주관적 구성요건이 충족돼야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봅니다.

2) 경영판단의 원칙 (Business Judgment Rule)

미국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기업 경영자의 배임적 행위를 형사처벌 하지 않는 대신,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해결합니다.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은 배임죄를 처벌하지 않는 미국에서 경영진의 민사책임을 제한하기 위한 이론으로 정립되어, 독일 주식법에도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는 원칙입니다.3 기업에 최상의 이익이 된다고 믿고 신중하게 의사결정 했다면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해도 경영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으로 ① 신의칙에 따른 행위일 것 ② 회사의 최고의 이익에 따른 행위일 것 ③ 알려진 근거에 의한 행위일 것 ④ 쓸모없지 않을 것 ⑤ 개인적 이익이 개입하지 않았을 것을 요건으로 합니다.4

4. 업무상배임죄를 배제하기 위한 경영판단의 원칙 인정 요건

1) 한국 법원은 '경영판단의 원칙'을 형사재판에 적용하여 업무상 배임죄의 성립범위를 제한하고 있습니다.5 대법원이 설시한 경영판단의 원칙 인정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조사하고 검토하는 절차를 거쳤을 것
  2. 이를 근거로 회사의 최대 이익에 부합한다고 합리적으로 신뢰하고 신의성실에 따라 경영상의 판단을 내렸을 것
  3. 그러한 경영상 판단의 내용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아니하여 통상 경영진을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선택 가능한 범위 안에 있을 것
  4. 경영판단으로 인한 행위가 법령에 위반되지 않을 것

2) 네 가지 요건 중에서는 '경영상 판단의 내용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아니하여 통상 경영진을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선택 가능한 범위 안에 있을 것'이라는 ⅲ) 항의 요건에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다른 요건들은 그 의미가 분명하여 입증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반면, '경영상 판단의 합리성'여부는 법관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해당 요건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마다 다를 수 있고, 수범자의 입장에서는 요건 충족여부를 객관적으로 가늠하기 어렵습니다.6 실제 경영판단의 원칙으로 무죄를 항변한 많은 사례에서, 법원은 ⅲ)항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배임의 고의를 부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관련 재판 과정에서는 다양한 간접사실과 증명자료를 통해 그 선택이 제3자의 입장에서 불합리하지 않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3) 이처럼 한국 법원은 요건 자체나 증명 책임의 분배 등에 있어, 미국 판례법보다 훨씬 엄격하게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기업 경영자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전에 위 대법원 판례가 제시한 네 가지 요건에 주의한다면, 경영상 판단에 수반되는 형사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Footnotes

1.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2. 반면 프랑스 대법원은 1985년 로젠블룸 판결에서 "계열사 간 거래로 일부 개별 회사가 손해를 입었더라도 전체 그룹 이익(group interest)을 중심으로, 기업집단의 존재와 통일된 경영전략의 존재, 계열사의 출연에 대한 계열사 간 이익과 부담의 균형이라는 요건이 모두 충족되면 그 처벌을 면제한다"고 판시함으로써 기업집단의 회사 재산 남용 행위에 대해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예외적 면책 요건을 확립했습니다. 이러한 원칙은 이탈리아에서 2004년 입법화되기도 했습니다.

3. 우리나라에도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으로 도입해 경영행위에 대한 형사책임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같은 내용의 상법개정안이 제출되기도 했으나, 아직까지 입법화되지 못했습니다.

4. Grobow v. Perot, 539 A.2d 180 (Del. 1988) 판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

5. 기업의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하여 있어서 경영자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더라도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에까지 고의에 관한 해석기준을 완화하여 업무상배임죄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 여기서 경영상의 판단을 이유로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는 문제 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인지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5도12633 판결 참조).

6. 우리 법원은 자금난에 빠진 계열회사에 유동성 지원을 하여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된 최고 경영자에 대해, 피지원회사의 당시 채무변제능력, 추가적인 자금지원으로 구제할 수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하여, (유동성 지원이 아닌) 다른 구제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영판단이었다고 보고 배임죄의 고의가 긍정된다고 판시하기도 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5. 10. 14. 선고 2014노3512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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